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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적 의미의 ‘소통’ 본문

경영 & 마케팅

언어적 의미의 ‘소통’

천억선한기업가 2018. 8. 31. 08:25

일상에 일어나는 소통의 문제를 다 들춰내서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겠다 싶어 여기서는 간단히 언어적인 영역만 한정해 보고자 한다.

회사에서 직원들과 같이 일하다 보면 간혹 분명히 잘 소통 했다고 생각했는데 일주일 뒤에 결과를 물어보면 의외의 답을 들고 오는 동료가 꽤 많다는 사실을 체험한다. 이는 굳이 언어적 소통의 문제 말고 다른 이유를 따지기는 좀 곤란하다. 다수가 모여서 하는 회의 참석자를 대상으로 회의가 끝난 후 회의에서 토의된 내용을 조사해 보면 토의했던 회의 주제와 결론이 천차만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대방 의견에 공감' 하는 쪽에 집중하기 보다는 조~금 경청을 하는 사람도 '주관적 판단이 가미된 공감'이 더 많고, 심지어는 아예 상대방의 말에 전혀 집중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으로 편집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주장이 센 사람의 경우는 상대방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1%로 듣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머리에 남겨두는 경우도 다반사다.


나는 수년간 회의를 주관하는 자리에 있었고 이 때 참석자들을 수없이 관찰해 본 적이 있다. 그 결과 놀랍게도 상대방이 말을 하고 있을 때 자신의 다음 할 말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10명 중 7~8명 이상인 것 같다는 경험을 갖게 되었다. 문화적으로 어릴적부터 주입식 교육 위주로 받은 학교 교육이 토론 문화를 완전히 왜곡시켜 만들어 놓은 사회적 문제도 있다. 그러나 수차례 관찰을 통해 느낀 것은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뭔가 심리적으로 자존심 상하고 굴복당한다는 느낌을 갖는 것 처럼 보여진다는 것처럼 보인다.
조직 생활에 있어서는 반드시 언어적 의미의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회사에서는 눈빛만 교환해도 서로 알아차리는 의사소통은 있을 수 없다. 지시와 보고 또는 수평적으로는 정보 공유 등 다양한 형태로 소통이 필요한데 이는 대부분 언어적 소통으로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제 경험치에 의한 의견이다. 언어적 소통의 기본은 '말하는 사람의 의견'과 '듣는 사람의 의견'을 일치 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경우 이 두 가지가 다른 것이 문제이다.
한가지 사례로 친구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보자. 친구는 대학 졸업식 때 시골에서 부모님이 올라오신다고 하여 '버스터미널'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문제는 당시에는 휴대전화가 없었고, 삐삐도 없었고, 공중전화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졸업식 당일 아침 일찍 친구는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부모님을 기다렸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부모님은 나타나지 않았다. 친구는 오후 늦게까지 유선 전화가 있는 자취집과 버스터미널, 졸업식장을 수차례 오가며 행방불명이 된 부모님을 걱정하며 찾아다녀야 했다. 온종일 뛰어다니다 겨우 해질무렵 시골집에 부모님이 무사히 도착한 것을 유선전화로 확인하였고, 해가 뉘였뉘였 져가는 캠퍼스에서 친구들과 사진 몇장으로 졸업식을 마쳐야 했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소통의 오류가 있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첫째로 주목해 보아야 하는 점은 시간 약속을 하지 않은 점이다. 부모님은 생각보다 훨씬 부지런하게 출발해 그 친구가 버스터미널에서 기다리기 한 두시간 전에 이미 도착해 버렸다는 것이다. 둘째로 약속장소의 불분명함이다. 버스터미널이라는 곳이 따져 보면 너무 큰 영역이다. 대부분 하차장소는 버스터미날의 외진 구석이나 길가 대로변이다. 친구의 부모님은 버스터미널 하차장소에 내려서 바로 거기서 기다린 것이 아니라 기다리기 편한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신 것이다. 그러다 친구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자 아는 분 댁으로 택시를 타고 이동해 버렸다.
이제 아픈 친구의 졸업식에서 빠져나와 소통의 문제로 돌아가 이 오류들을 객관화 해보자. 만날 약속이라는 것은 반드시 두 가지가 일치해야 한다. 그 두 가지는 시간과 공간이다.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 만날 사람이 공존하지 않으면 이루어 지지 않는 것이 만남이다. 따라서 친구는 약속을 잡을 때 당일 '몇시 몇분에 버스터미날 어느 위치'라고 명확히 말했어야 한다. 그리고 부모님께 그 내용을 잘 들었는지를 물어서 확인해야 했다. (뭐 추가하자면,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이니 2차 시나리오로 서로 기다리다 어느 시간까지 안나타나면 어떤 조치를 취할지를 반드시 약속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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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은 동조화 또는 공명 같이 무전기 주파수처럼 '말하고 듣고'가 쌍방 통행으로 일치해야 한다. 군대에서는 이 주고 받음을 일치시키기 위해 소위 '복명복창'이라는 훌륭한 소통의 기술을 활용한다. 의미상으로 보면 약간 강압적이 되는 느낌이 없지 않으나 지시와 수행이 언어적 문제에서 비롯되는 경우라면 다소 부드럽게 변형된 '복명복창'을 활용해서 말하기와 듣기를 일치시키는 것이 훨씬효율적이다고 하겠다. 즉, 할 일을 명확히 설명하고 말을 마치면 다시 상대방에게 들은 바를 이야기하게 유도 함으로써 '말하고 듣기'가 일치하게 소통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할거야?’라고 질문한다. 이는 분명 매우 어려운 실천임에 틀림없다.